나를 찾아 떠난 친환경 여행, 지리산 둘레길 (겨울편)

힐링/여행·2010. 11. 25. 07:30

지리산을 둘러 가는, 지리산길 http://www.trail.or.kr/


봄인데도 불구하고 눈이 내리던 이상한 날씨의 연속이었던 작년 봄이었어요. 일본 유학을 앞두고 무언가 못한 것들이 있나 생각하다 혼자 여행을 다녀오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처음엔 섬으로 가볼까 했으나 혼자 외딴곳에 틀어박혀 있으면 엉뚱한 생각만 할 것 같아 지리산을 가기로 마음 먹었어요. 재작년 여름휴가 때도 다녀왔지만 3코스를 완주하지 못했었거든요. 못다한 산행을 완주하고 싶었으며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금계에서 묵었던 펜션의 풍경이 이따금 생각났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표를 사고 비와 눈바람을 헤치며 다녀왔어요.

동서울 터미널(8:20) >> 죽암휴게소 >> 함양 >> 인월 터미널(12:00)

3시간 40분 정도 소요됩니다. 참고하세요.


이때가 첫 혼자 여행이었어요. 그런데 도착하니 비가 내리더군요. ‘비 오는 날 혼자서 산길을 걸어야 하나. 왠지 쓸쓸한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전 해보기로 합니다. 원래 처음은 모두 힘든 법이니깐요. 처음 인월터미널에서 내리면 편의점이 있더군요. 먼저 패밀리마트에 들러서 약간의 경비도 뽑고 우의를 두 개 챙겼어요. 왜냐하면 가방에도 덮어줘야 하니깐요. 그리곤 삼각김밥, 소시지, 핫브레이크, 초콜릿, 그리고 생수 500ml 2통을 샀어요. 초콜릿과 생수는 생명과 직결 되는 중요한 음식이니깐요. 드디어 혼자 여행의 시작!! 먼저 안내센터에 들려서 지도를 얻고, 개통구간 정보와 코스에 대한 설명을 들었어요. 유의점도 말이죠.

※ 인월버스터미널 번호를 저장해 두세요. 나중에 돌아가실 때 시간을 알아야 하니깐요. 화장실도 꼭 다녀오시고, 물도 채우세요.

버스표 인증샷(18,300원)

전라도식 정식(5,000원)



일단 점심을 먹기 위해서 작년에 들렀던 식당에 들러 산채비빔밥을 먹었어요. 서울에서는 테이블 아담해서 혼자 먹기 적당한데. 이곳은 전라도라 반찬이 상당히 많이 나오더군요. 저 혼자 시켰는데 수많은 반찬들을 가져다 주시니 조금 민망했어요. 그래도 산행 전 점심이니깐 이 정도는 먹어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든든하게 챙겼어요.

앞서 말했듣이 재작년 3코스의 절반인 인월~매동마을까지 거의 5시간이 걸려서 왔던 기억이 있었어요. 그리곤 산행을 멈추고 돌아갔었죠. 완주를 못한 부분이 항상 걸렸었어요. 그래서 이번엔 버스를 타고 매동마을에 도착, 그곳을 시작 포인트로 해서 걷기 시작했어요.

매동마을에 있던 우물


저에겐 혼자만의 첫 여행이었는데. 비가 보슬보슬 내리더군요. 아무도 없는 길을 보면서, ‘남들은 겁먹고 포기했겠지?! 난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갖고 천천히 산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왠지 포기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더 걷고 싶어졌는지도 모릅니다. 당시 유학을 앞둔 시점이라 혼자만의 생각도 많았었고 정확히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뭔가 으스스한 느낌

낙서된 벽들



그렇게 처음으로 만난 곳은 매동마을이었어요. 이 마을은 아주 작고 아담한 시골 마을인데. 지리산을 계획하신 분들이 의도적으로 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벽에 누군가가 낙서 같은 디자인을 해놨더군요. 낡은 느낌의 옛날 집들에 낙서는 왠지 낯설었지만 제법 밝은 색감들이 잘 어울려져서 발랄하고 신선한 느낌을 주더군요.

한 20분을 걸었나 역시나 오랜만의 산행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어요. 그 동안 도시생활을 하며 얼마나 오랫동안 운동을 안 했는지 조금만 올라가도 숨이 가쁘더라고요. 비가 왔지만 금새 땀 범벅이 되버립니다. ‘역시 3코스야!!’

마을 근처의 대나무 길

이런 오솔길을 걸어가요


돌에 소원을 빌었어요

이런 나무는 조심



비와 함께하는 산행의 좋은 점은 조용한 풍경입니다. 조용한 풍경을 보며 혼자 걷다 보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렇게 걷다 어느새 높은 곳에 다달았을때 보이는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더군요. 도시에서 보던 높다란 빌딩과는 비교 조차 할 수 없는 멋진 풍경입니다.

전경 파노라마 (꼭 클릭해서 보세요)


※ 산행 시 지팡이를 준비하던지, 산에서 큰 나뭇가지를 구해서 등산 하세요. 지팡이를 이용하면 다리에 주는 부담을 약 10%이상 줄여준다고 하네요.

가다 블로그에서 자주 봤던 쉼터를 만났어요. 지쳐 있던 저에게 오아시스 같은 한국 주막 형식의 가게였어요. 역시나 비가 와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더군요. 인기척이 없길래 그냥 지나치려 했으나 다행히 안에는 세상 걱정 없어 보이는 주인 할머님이 계시더라고요. 그렇게 막걸리 한잔을 시켰는데. 한잔 단위는 없다며 한 병을 갖다 주셨어요. 그리곤 너무 추워서 안주 없인 힘들 거라며 손수 라면까지 끓여 건네주시더라고요. 원래 술을 좋아하는지라 한병은 역시나 딱 적당했고, 곰나물을 다듬고 계시는 할머니와 얘기할 수 있어 즐거운 기분으로 먹었답니다. 

가다 보이는 쉼터

가운데 보이는 곳이 푸세식 화장실



할머니께선 '비가 오는데 걷는 사람들 이해가 안 된다' 라시며 정감 가는 웃음을 지으시며 저와 또래인 손주 얘기를 한참 나눴었어요. 비 오는 날 가서 그런지 안개 낀 산을 배경으로 먹던 그 라면 맛을 잊을 수 없어요. 그리고선 혼자 왔다며 라면 값이랑 술값을 대폭 할인 받아서 4천원이라는 푼돈만 받으시더라고요. 이게 시골의 정인가 봐요. 그렇게 약간 알딸딸 한 기분으로 10여분 걸으니 또 금새 깨더라고요. 산이라 그런가~ 아무튼 산에선 술을 조금만 마셔야 할 것 같다는 교훈도 얻었답니다. 나중에 다른 분들께 들은 얘기론 국수가 정말 맛있다고 하더군요. 근데 이런 주막에서 지리산 경치를 보면서 먹는 것들은 다 맛있지 않을까요?!



다시 길을 걷다 앞서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보였어요. 제가 걸으면서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앞사람이 남긴 젖은 발자국이었어요. ‘나 말고도 누군가 앞에서 걷고 있구나!’, ‘틀린 길이 아니구나!’ 그런 생각으로 그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조금 빠른 걸음으로 갔었어요. 혼자 걷는다는 건 익숙치 않은 외로움과 싸움이었으니깐요. 그러다 저 멀리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보였어요. 따라잡는데 한참 걸렸지만 결국엔 거의 따라 잡았어요. 머쓱하게 인사를 나누고 얘기를 하면서 같이 걸어 갔어요. 그런데 남자분이 일본인이었어요. 일본 유학을 예정중인 상태에서 만난 일본인 아저씨 너무 반갑더군요. 그 동안 일본어를 1년간 틈틈이 배워왔지만 실제 일반인과 대화 해본 건 이날이 처음이었어요.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곳, 둘레길. 스지 신이치(좌) 김남희(우)


그렇게 만난 두 분은 사제간이라고 하시는데요. 여행과 관련된 책을 위해 한국을 여행 중이라고 하셨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두 분 굉장히 유명하신 분들이었어요. 오른쪽에 계신 분은 ‘한비야’ 같은 도보여행가김남희’씨였고요. 한 분은 ' 슬로우 라이프(Slow Life)'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환경/인권단체 운동가스지 신이치’ 상이였습니다. 저 또한 현재 블로그에서 보이듯이 친환경에 관심이 많다 보니 ‘일본’, ‘친환경’ 이란 공통 관심사로 심심치 않게 얘기하며 왔답니다. 어설픈 일본어를 써볼 수 있었고, 김남희씨를 통해서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특히나 ‘카탈로그 하우스’라는 일본의 친환경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전해 들었고, 기회가 된다면 일본 오사카에서 주최하는 강의도 들으러 오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비 오는 지리산에서 내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앞 사람들과 이렇게 공통점이 많은 것은 '무슨 인연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더군요. 아무튼 그 당시엔 몰랐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둘레길의 매력 아닐까요. 사실 ‘예쁜 여성팀도 만나지 않을까??’ 라는 쓸데없는 생각했었어요.




그렇게 짧은 인연을 끝맺고 아쉬움의 인사를 하고 다시 혼자가 되었어요. 막상 혼자가 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내가 여기에 왜 와서 이렇게 생고생을 하나?’ 부터 시작해서 과거 내가 잘못하거나 잘한 것들 그리고 지금의 내 모습과 미래에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해 생각이 들더군요. 특별히 고민하거나 반성하고자 떠오른 주제가 아닌데도. 하염없이 걷다 보면 그런 인생에 대한 생각들이 계속 나며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 생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진다는 느낌이었어요. 그 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성찰, 어쩌면 그걸 위해서 혼자 걷고 있는 게 아니였을까요.

마지막으로 그렇게 산을 오르며 느낀 점을 적어 왔어요.


- 인생에는 오르막 길과 내리막 길이 항상 반복적으로 존재한다
- 높은 곳에 올라야 더 멀리 보인다
-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만은 없다
- 아무리 위기가 닥쳐도 그 후엔 분명 햇빛이 비친다
-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은 생각보다 멋진 일이다


그렇게 5~6시간이 흐른 후 3코스의 끝인 금계가 보였어요. 3코스의 절반인 매동마을~금계 코스를 쉽게 설명 드리자면, 뒷산의 해발 500m정도의 약수터를 역 4~5번 왕복하는 기분이에요. 해발이 그리 높지도 않고, 가파르거나 하는 부분이 거의 없어서 조용한 산길의 느낌이에요.


일반인이 걷기에는 딱 이 정도의 코스가 좋겠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곳이에요. 참고로 하루에 3코스를 완주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20세의 건강한 청년이 반 코스만 도는데도 굉장히 지친다는 느낌입니다. 3코스를 군대에 비유하자면 딱 행군입니다. 그들은 20~40kg의 군장을 하지만, 우리는 군장 대신 도시인으로써 체력이 깍인다는 핸디캡을 가졌다는 것 뿐, 딱 행군 느낌입니다. 하지만 산 잘 타시는 분들은 별거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3코스를 하루에 도는 것은 일반인에겐 무리라 생각되네요.

마지막 도착지인 나마스테 펜션에 들렀습니다. 재작년에도 이곳에 머물렀었죠. 그런데 이번엔 예약을 하지 않아서 빈 방이 없길래. 잠시나마 재작년의 느낌을 느끼고 싶어 펜션 앞 의자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고 완주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어요. 지리산을 또 찾은 건 이 펜션에서의 풍경이 너무나 아른거렸기 때문이지요.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그런 느낌. 이번엔 그 모습을 파노라마 사진으로 담아서 왔어요. 저 멀리 천왕봉도 보인답니다.

나마스테에서 본 풍광

커피를 마시며 사진을 찍고 있을 때, 펜션 아저씨께서 날 알아보셨다. 먼저온 손님들과 얘기하고 계셔서 신경 못 쓰시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마루에서 자도 괜찮은지?? 물어보시곤 앞서 도착한 여행자 분들과 함께 펜션을 쓰기로 했어요. 어찌나 고마우시던지!

거기에 계시던 또 다른 두 팀은 30대 중반의 부부 분들과 아버지 뻘보다 연세가 약간 많으신 어르신 한 분이 계셨어요. 식사를 하고 계셨기에 조심히 인사 드리고 저녁 식사에 합석을 했어요. 그렇게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식후 자연스럽게 술자리가 생겼답니다. 혼자만 걷다가 여러 사람들을 만나니 낯가림 보다는 반가운 마음이 더 컸어요. 처음 만난 분들인데도 같은 길을 걸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얘기가 잘 통했어요. 어르신들은 아직 젊은 제게 주옥 같은 말씀을 해주셨고, 난 수많은 심부름과 얘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보답을 드렸답니다. 올 때만 해도 외롭게 잘 거라 생각했던 걱정을 잊기엔 충분한 밤이었어요

그리고 그날 밤을 잊지 못하는 것은 다도 때문이었어요. 술을 먹고 곧바로 마시는 보이차가 좋다며 술에 취한 채 차를 마셨어요. 다음날 일어나고 나서 다도를 신봉하게 되었어요. 전날 제가 먹었던 술은 소주 2병 정도, 원래 주량이 센 편이지만 산행이 힘들어서 술이 금방 취했었어요. 그래서 더는 못 먹겠다고 말씀 드리고 거절할 정도였는데. 보이차를 연거푸 마신 탓인지 아무런 뒤끝도 없더군요. 정말 신기한 경험 이였어요."



전날 새벽 2시에 잤는데도 공기가 좋은 탓에 새벽 6시가 돼서 일어 났어요. 그리고 평소엔 전혀 하지 않던 아침 산책도 했답니다.



그렇게 아침을 먹은 후 오전 9시 버스를 타고 지리산길 여행을 마무리 했어요. 다행히도 나마스테 아저씨께서 정류장까지 태워주셔서 시간도 딱 맞게 여유롭게 왔어요. 이곳에 오면 잘 모르더라도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이곳을 찾아도 외롭지 않더라고요. 담번엔 할머님이랑 사장님 선물도 챙겨가야 겠네요.

그렇게 잘 다녀왔어요. 혼자라는 여행이 인생에 있어서 처음이었지만, 가볼만 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특히, 제가 갔을 때는 비가 오고 눈보라가 조금 불었지만, 그런 위기 상황을 이겨낸다는 믿음이 자신감을 불어 넣어 줬고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지리산 둘레길,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하는 것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후에 다른 사람이 따라올 수 있는 길을 만든다는 점에서 멋진 일이라 생각도 있었어요.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각을 다듬는 기회가 된 것이었어요. 혼자라서 내가 발길 가는대로 정한 곳으로만 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였구요. 의지할 사람 없이 다닌다는 것도 판단력 흐린 저에게는 도움되는 일이었어요.

이렇게 누구나 용기만 내고, 생각하고 바로 실천하면 갈 수 있는 게 혼자만의 여행이 아닐까요. 두려움을 생각하면 끝이 없어요. '내가 길도 모르는데..', '등산화도 없는데..', '주변에서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두려움이 생기고, 결국 움직이질 못해요. 모두들 생각하면 바로 떠나는 게 정답일 것 같아요. 한번 떠나버리면 되돌릴 수 없어서 바로 가게 되고, 한 번 시작하면 두 번째부터는 쉬워지니깐요.

자세한 코스에 대한 정보와 찾아가는 길은 이전에 적은 글과 공식 홈페이지를 참고하세요.

- 흙 길을 걸으며 생각하는 친환경 여행, 지리산 둘레길 (여름편)
- 지리산 둘레길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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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심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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